노인이 남기고 간 것들
김 영 식
비바람이 얼마나 들이쳤는가 푹 패인 흙벽에 드믄드믄 옹이처럼 박혀있는 쇠못 주인이 놓고 간 옥수수 두어 자루 쪽파 한 줌 씨알 굵은 마늘 여나무개가 맥없이 걸려있다
치매로 시름시름 앓던 노인이 요양원에 실려 간지 얼마 안 되어 세상 떠났다고 했는데 세월이 또 한참이나 흘렀나 보다 무심코 지나치다 눈에 들어온 저 허우대 멀쩡한 노인의 종자들 싹 한번 터보지 못하고 속이 텅 빈 채로 긴 세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구나
주인 떠난 지 오래된 삐거덕거리는 툇마루에 흰 눈발만 서성이는 날 아무도 눈여겨 봐주지 않던 담벼락에 저무는 노을이 벌겋게 걸려있다 <저작권자 ⓒ 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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