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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시인 "노인이 남기고 간 것들"

김종돈 기자 | 기사입력 2023/09/13 [11:30]

김영식 시인 "노인이 남기고 간 것들"

김종돈 기자 | 입력 : 2023/09/13 [11:30]

노인이 남기고 간 것들

 

                        김 영 식 

 

비바람이 얼마나 들이쳤는가

푹 패인 흙벽에

드믄드믄 옹이처럼 박혀있는 쇠못

주인이 놓고 간

옥수수 두어 자루 쪽파 한 줌

씨알 굵은 마늘 여나무개가

맥없이 걸려있다

 

치매로 시름시름 앓던 노인이

요양원에 실려 간지 얼마 안 되어

세상 떠났다고 했는데

세월이 또 한참이나 흘렀나 보다

무심코 지나치다 눈에 들어온

저 허우대 멀쩡한 노인의 종자들

싹 한번 터보지 못하고

속이 텅 빈 채로

긴 세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구나

 

주인 떠난 지 오래된

삐거덕거리는 툇마루에

흰 눈발만 서성이는 날

아무도 눈여겨 봐주지 않던 담벼락에

저무는 노을이 벌겋게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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