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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팠다!

김종돈 기자 | 기사입력 2024/06/01 [08:33]

[칼럼]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팠다!

김종돈 기자 | 입력 : 2024/06/01 [08:33]

◎ 사진설명= 이홍대 (주)파워제일크레인 대표


해방이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근현대사를 살아 오면서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자식이 굶어죽게 되는 극도의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물리적 배앓이와 정신적 배앓이가 있었다.


그때는 초근목피로  배를 채웠고 그로 인해 심한 배앓이를 했다. 그때 배앓이는 병원에 가는 것보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내 손은 약손이란 주술적 치료가 효과가 있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식품 위생 상태가 좋지않아 염장식품과 건어물이 귀한 인기 식품이었던 시절 음식이 쉽게 상했고 국이 상할까 다시 끓여놓곤 했다.


가난과 추위, 굶주린 삶의 환경이 위생적이지 못해 물과 음식으로 인해 배안에는 회충이 자랐고 이질과 설사로 배아픈 것이 흔히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인 배 아픔보다 더  심한 배앓이가  있었다.


바로 사촌이 논을 살 때였다. 가까이 사는 친한 이웃이나 사촌들의 자식들이 공부를 잘 하거나 농사가 잘 될 때 배가 몹시 아팠다. 자신보다 잘 살게 되거나 성공할 때 오는 자기 무능함에 대한 자학 현상이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은 일반적으로 제삼자의 성공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기가 잘 아는 이웃이나 가까이 지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상대가 잘 되는 것은 자신의 상황이 어렵고 열등할수록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다.

특히 농경 사회에서 논이란 먹고 사는 근원이 되는 터전으로 가까운 경쟁적 위치에 있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은 이런 이유이다.

우리 민족은 이렇게 남이 논을 사면 배가  몹시 아픈 민족이었다.
그러기에 해방후 어려웠던 한국경제는
이러한 현상들로 몹시도 배가 아팠던 심한 열등의식과 자극이 오늘의 한국경제를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남 잘 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오기가 인생을 바꿀만한 에너지를 만들어 냈으며 오늘과 같은 선진국으로 다가서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남이 잘 되면 심하게 아팠던 정신적 배앓이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 치열한 경쟁을 하며 낮과 밤을 가리지지 않고 미친듯 일을 했다.


그결과 우리는 집집마다 최소한 한두대의 자가용을 보유하고 사는 화려한 변신을 했지만
1960-70년대는 섬유, 의류, 신발 등 경공업과 경부고속도로, 철도망, 항만 등 국가적 기반 시설을 위한 건설에 죽을 듯이 일을 했다. 이런 것들이 성공의 시나리오가 되었다.
중동 파견 및 독일 광부 간호사 등 지칠 줄 모르고 외화벌이에 나섰고 강원도의 최악의 탄광 갱도에서 죽음을 담보한 채굴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구로공단에서 섬유,전자 산업에서 젊은 여성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산업체 학교에서 어려운 가정을 일으키기 위한 피눈물나는 고통을 감수했다.
만약 사촌이 논를 살 때 우리 민족이 배 아프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겠는가?
1인당 국민소득이 1960년대 79달러였는데 2023년 통계에 약 35,000달러로 약 440배 이상 증가했는 걸로 나와 있다.

소득 증가와 더불어 교육, 의료,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삶의 질이 크게 바뀌어 당당하게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고 2023년 명목 GDP 10위의 국가가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팠던 열등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있다. 지구촌 어느 나라도 반세기만의 천지개벽을 이루어낸 나라는 없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새옷을 갈아 입어야 한다.
이젠 주변에 어렵고 힘든 자가 있으면 돕고 위로하며 작은 것이라도 베풀고 나누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아직도 79달러의 최빈국의 시대에 배가 아팠던 관성이 남아 있다면 책갈피에 끼워 추억으로 갈무리하고 이제부터라도 감사한 마음과 여유를 갖고 사촌이 논을 살 때 우리는 박수를 쳐야한다.

이것이야말로 4만달러를  향해 나아가는 오늘의 시대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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