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ACCEPT_ENCODING in /home/inswave/ins_news-UTF8-PHP7/sub_read.html on line 3
‘낯설움’에 대한 호기심을 찾아가는 구혜진 작가:서산신문
로고

‘낯설움’에 대한 호기심을 찾아가는 구혜진 작가

서산신문 | 기사입력 2022/03/21 [08:34]

‘낯설움’에 대한 호기심을 찾아가는 구혜진 작가

서산신문 | 입력 : 2022/03/21 [08:34]


“그림과 마주하면 자존감이 살아나고 우뚝 서는 것을 느껴요” 

 

아버지와의 이별을 그녀는 이렇게 회상(回想) 한다.

평소 아팠던 자리는 점점 검게 물들고

발끝은 꼬부라져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가지마! 제발... 우리 곁에 머물러 줘...

아무런 미동 없이 굳어져만 갔다.

뭐가 그리 바쁜지 홀연히 떠나셨다.

세상이 낯설게 느껴졌다.

 

‘Father - 그 곳에 머물다’ 작업노트 中에서 

 

#미술과의 인연은?

어릴 때부터 그림만 그리다 보니 “난 그림을 그려야 해?!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림이 전부야”라는 강박이 스스로 있었는지도 몰라요. 글을 배우기 전 엄마는 글씨 연습하라고 네모 칸 공책을 사주셨어요. 공책에 글자 대신 그림으로 한칸 한칸 그려가며 표현했던 기억이 나요. 아마도 처음 그림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시골집 마당과 썰물에 축축이 젖은 모래사장은 기꺼이 스케치북이 되어주었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시골이라 주변에 미술학원이 없었어요. 선생님들은 방과 후 꼭 그림을 그리고 집에 가라 하셔서 끝나고 2시간 걸어 집에 가면 늘 어두워져 있었어요. 선생님들 덕분에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전국대회 등 나갈 수 있는 모든 미술대회는 다 출전해서 상도 많이 받았어요. 결국엔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죠. 하지만 늘 부모님께서는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죠. 시골 바닷가 갯마을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미대 진학... 아직도 귀에 맴돌아요. 예술가는 배고프다고...?! 미술대회에서 아무리 큰상을 받아와도 아빠는 단 한번도 잘했다는 표현을 해주시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빠도 뿌듯하셔 뒤돌아 미소 짓고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저도 부모님께 표현하지 않는 무뚝뚝한 맏이였고요. 여유롭지 않은 집안 환경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는 결국 미대에 보내주셨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미술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죠. 아버지 생전에 못 했던 말을 하고 싶네요.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라고요.

 

#그동안 작업을 요약 정리 한다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과 일상, 감정들을 인간과 식물이라는 소재를 조화롭게 넣어 내 삶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요. 늘 바쁜 일상속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연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이 주는 소소하고 신선한 감성들을 잃어가는 것이 안타깝죠. 초록의 식물들은 나 자신이며 내가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내 그림 속에 등장해요. 평온하게 자연으로부터 치유 받고 그 속에서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표현했죠. 왜 삶에 집착하는가? 묻는다면 11년 전 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은 허무함에서 출발했던 거 같아요. 

 

#나에게 그림이란?

나 스스로 하염없이 보잘것없고 자존감이 바닥났을 때 그림과 마주하면 내 자존감은 살아나고 나는 또다시 우뚝 서는 것을 느껴요. 성격 급한 난 운전대만 잡으면 광년이 따로 없죠. 뭐에 그리 쫓기는지 약속시간 1분 1초에 초조하고 불안해해요. 하지만 오랜 집중력과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을 통해 이런 집착과 불안감을 치유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림은 나에게 그런 존재지요. 나에게 그림이 없었으면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까? 그리 즐거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을 거 같아요. 요즘 바쁜 일상 때문에 붓을 내려놓을 일들이 많아지는데 혹시라도 그림이 나를 화려하게 포장해주는 도구는 아닐까? 생각하면 슬퍼져요.

 

#가정과 일, 작업을 병행하며 힘든 점이 있다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잘해 내는 성격이 아니라 어느 하나에 집중하면 또 다른 한쪽은 소홀해지기 마련이죠. 그러다 보니 특히 가족에게 미안해요. 그러면서 남편의 취미가 요리와 살림하기이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해요. 엄마이자 아내이고 미술 선생님이자 미협 사무국장 그리고 작가인 삶이지만 많은 역할을 맡고 있어 몸이 하나가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죠. 사랑은 줄 수 있을 때 하염없이 주고, 그림도 그릴 수 있을 때 그리고, 가르칠 수 있을 때 수업도 하는 거죠.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건강하게 살아있음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요.

 

#작가의 삶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거나 고민이 있다면?

나에게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건가? 요즘 들어 작품을 할 때마다 그림이 점점 어려워지고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것 같아요. 전에는 그냥 그리면 되지. 보는 사람들이 알아서 편하게 해석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왜 이걸 그리는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계속 던지곤 하죠.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단지 삶의 치유를 위한 행위인가? 아니면 누구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인가? 어렵고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후회보다는 그동안 그림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조금은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서산미술협회의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힘든 점과 보람이 있다면?

사무국장을 처음 맡았을 때 일이라고는 미술 지도만 해온 터라 행정업무와 사무업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죠. 처음에는 생소하고 뭐가 뭔지 몰라 실수도 많았어요. 그래도 회원분들이 이해해 주시고 좋은 말씀도 주셨죠. 간혹 궁금증이 많은 분들이 있어 때로는 몸이 피곤하고 작업에 방해되기도 했지만 폭 넓은 대인관계 속에서 얻는 것도 많아요. 서산 미술협회가 젊은 지부장님과 저로 인해서 젊은 작가들이 많이 영입되고 점점 활성화되는 것을 볼 때 보람을 느껴요.

 

#최근 작업은? 시사하는 방향은?

주로 유화로 작업하며 언 듯 보기에는 사실주의 그림처럼 보이나 초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작업하고 있어요. 작품들은 대부분 저의 심리적 표현이라 할 수 있죠. 초록색 식물과 인간을 조화롭게 배치해 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고 그러면서 치유 받는다고나 할까요. 요즘 작업하는 작품 중 하나는 ‘불편한 해석’이라는 작품인데, 저의 생활에서 “편히 앉아 여유롭게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며 쉼 없이 달려야 함이 나의 숙명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초록의 생명력은 결코 쉽게 꺾이지 않으며 초록과 마주하면 나 또한 생명력이 강해지고 치유되는 것을 느껴요. 이처럼 보는 시각에 따라 혹은 인간의 심리적 양면성을 의자라는 매개(媒介)를 통해 그려내고 있어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이자 작가인 저의 삶을 투영한 작품이죠. 어떠한 방향으로 작품을 풀어나갈지 더 고민되는 작품이기도 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5월 말쯤 서울 두루아트스페이스 갤러리에서 3인 전시를 준비중이고 7월 중순에는 서산예술창작촌에서 초대개인전이 있어요. 서울에서 하는 전시는 좋은 분들과 함께 전시하게 되어 영광이고 서산예술창작촌 전시는 내가 지곡 출신이라 더욱더 뜻깊고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거 같아요. 그동안 초현실주의를 기반으로 작품들을 해왔는데 올해 전시가 끝나면 좀 더 초현실주의에 근접한 그림들을 시도해보려 해요. 어느 초현실주의 전시에서 본 글귀 중 ‘기묘한 낮설움’ 이란 표현이 와 닿았어요. 단어가 주는 기묘함과 낮설움도 새롭지만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정말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인간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반면 호기심도 있거든요. 바로 그 지점을 찾아 접근해보고 싶어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기획·탐방 많이 본 기사